물속에도 산소가 있는데 왜 사람은 익사할까? 생물학과 물리학으로 풀어보는 산소의 비밀
물속에도 산소가 있다면, 왜 사람은 숨을 쉴 수 없을까?
“물속에도 산소가 있다는데, 왜 사람은 숨을 못 쉬고 익사할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 같지만, 생물학, 물리학, 해양학, 진화생물학에 걸친 매우 흥미로운 과학적 의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물은 화학식 H₂O이며, 산소(O)를 포함합니다. 또 바닷물이나 강물에는 ‘녹아 있는 산소’도 존재하죠.
그렇다면 물속에 산소가 충분히 있는데, 왜 사람은 이를 이용해 호흡하지 못하고 익사하게 되는 걸까요? 혹시 우리가 호흡법만 익히지 못한 것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사람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이유를 다양한 과학적 원리로 해석해 보고, 물고기와 같은 수중 생물이 어떻게 산소를 이용하는지, 수중 호흡 기술 개발의 가능성, 관련된 해양 구조 생물학까지 다방면으로 설명해드립니다.
1. 물속 산소의 정체: 물(H₂O)의 산소와 녹아 있는 산소는 다르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물속의 ‘산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 화학적으로 결합된 산소(H₂O의 O): 물 분자의 일부로 결합되어 있어, 생물이 직접 사용할 수 없음
- 녹아 있는 산소(Dissolved Oxygen, DO): 대기 중 산소가 물속에 녹아 있는 형태로, 수중 생물이 호흡에 사용하는 산소
결론: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산소는 ‘공기 중 자유로운 산소 분자(O₂)’이며, 화학적으로 결합된 산소는 아무리 많아도 직접 호흡에 쓸 수 없습니다.
2. 물속에도 ‘호흡 가능한 산소’는 있지만, 너무 적다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약 21%입니다. 그러나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는 극히 미량이며, 일반적으로 1리터당 5~10mg 수준입니다.
즉, 공기 1L에 있는 산소는 약 210ml인 반면, 물 1L에 있는 산소는 0.01ml에 불과합니다. 무려 20,000배 차이입니다.
비교 예시:
- 공기 1리터 → 산소 약 210ml
- 물 1리터 → 산소 약 0.005~0.01ml
이 산소량으로는 인간이 필요한 산소 소비량(평균 250ml/분)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죠.
3. 사람의 호흡기관은 기체용, 물속에서는 작동 불가
인간의 폐는 기체 상태의 산소만 흡수할 수 있도록 진화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폐포는 얇은 막을 통해 기체 산소가 혈액으로 직접 확산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지, 액체를 통과해 산소를 흡수하는 데는 전혀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유:
- 폐포는 물에 젖으면 표면장력이 무너져 산소 흡수 불가
- 액체를 흡입하면 폐의 가스 교환 기능이 마비됨
- 물이 기도로 들어가면 기침 반사 작동 → 기도 폐쇄
즉, 물속에서 아무리 숨을 쉬려 해도 기관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산소를 얻지 못하고, 물만 마시게 되면서 익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물고기는 어떻게 물속에서 숨 쉴 수 있을까?
물고기나 일부 수중 생물은 사람과 전혀 다른 호흡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아가미(Gill)를 통해 물속의 ‘녹아 있는 산소’를 효율적으로 추출합니다.
아가미의 작동 원리:
- 물고기는 입으로 물을 들이마신 뒤 아가미로 내보냄
- 아가미의 얇은 막(필라멘트)에서 혈관과 물이 접촉
- 산소가 물에서 혈액으로 확산됨
- 이산화탄소는 반대로 물로 배출됨
아가미는 기체가 아닌 액체에서 용존산소를 추출하도록 진화된 놀라운 생물학적 구조입니다. 인간의 폐와는 목적도, 방식도 완전히 다릅니다.
5. 인공적으로 물에서 산소를 추출할 수는 없을까? ‘수중 호흡기술’의 미래
‘아쿠아맨처럼 숨쉬기’는 과학자들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습니다.
수중 호흡 장비의 예:
- 산소통 기반 스쿠버 장비: 공기 압축통을 통해 지상과 같은 호흡 제공
- 화학적 산소 추출 장치(연구 중): 물에서 산소 분자만 추출하여 호흡에 활용
- 인공 아가미 컨셉: 이론상 수면 아래에서 물속 산소를 분리하여 인체에 공급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물속 산소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실용 장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익사’는 과학적으로 매우 당연한 현상입니다.
6. 익사의 생리학: 왜 물을 마시면 죽는가?
익사는 단순히 ‘숨을 못 쉬는 것’ 그 이상입니다. 물이 기도로 들어가면서 생기는 복합적 생리 반응이 생명을 위협합니다.
익사 과정 요약:
- 기도에 물이 들어오면 반사적으로 기침 → 산소 공급 차단
- 뇌는 산소 부족 상태에 진입 → 혼수, 심장 정지
- 물이 폐포를 채우면 가스 교환 중지 → 질식
- 수분 흡입으로 폐 부종, 체내 산염기 균형 붕괴
결과적으로 물이 많고 산소가 있는 환경임에도, 인체는 산소를 이용할 수 없게 되며, 질식과 유사한 경로로 생명이 위협받습니다.
7. 진화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육상 호흡’
인간은 약 3억 년 전 바다 생물에서 육상 생물로 진화하며 폐를 가진 종으로 발전했습니다.
이후에는 물에서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고, 대신 대기 중 산소를 활용하는 방식에 완벽히 적응했습니다.
진화 결과:
- 뇌의 대사율 증가 → 더 많은 산소 필요
- 폐의 복잡한 구조 발달 → 기체 교환 최적화
- 물에 젖은 폐 → 질병 및 생존 불리
결국 우리는 ‘물속 산소’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지상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8. 돌고래, 고래는 왜 익사하지 않을까? 해양 포유류의 비밀
고래나 돌고래는 우리처럼 폐로 숨 쉬는 포유류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물속에서 익사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 의식적인 호흡: 수면 위로 올라와 스스로 숨을 쉽니다 (자동이 아님)
- 숨 참는 능력 극대화: 최대 90분간 잠수 가능
- 혈액 산소 저장능력 발달: 인간보다 3~4배 높음
- 폐를 완전히 비우고 수심 깊은 곳에서도 체내 가압 방지
즉, 익사하지 않기 위해 생리학적으로도, 행동적으로도 철저한 진화를 거친 존재들입니다.
9.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약 인간이 물속에서 산소를 추출할 수 있었다면, 해양 문명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했을지도 모릅니다.
상상해볼 수 있는 변화:
- 인간의 활동 범위가 바다로 확장
- 해저 도시 건설 가속화
- 해양 자원 개발 및 전쟁의 패러다임 변화
- 해양 스포츠, 수중 교통 수단 일상화
하지만 현재의 인체 구조로는 불가능하며, 생물학적 한계는 명확합니다. 대신 우리는 기술과 도구를 이용해 그 한계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결론: 물속에 산소가 있어도, 인간은 물속에서 살 수 없다
물속에는 산소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폐가 처리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닙니다. 물고기처럼 아가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물을 여과해 산소를 추출하는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가 숨 쉬는 데 필요한 것은 기체 형태의 산소이며, 폐는 오직 이를 흡수하도록 설계된 장기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물속에 산소가 있어도, 우리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물을 마시면 산소는커녕 기도 폐쇄와 질식을 유발해 결국 익사에 이르게 됩니다.
과학은 이 제한을 이해하고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생물학이 허용하는 경계는 여전히 견고하게 우리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 속에서 인간은 더욱 경이롭고 치밀하게 진화해왔습니다.